사람의 향기

이후 8년만에 묶어내는 네 번째 창작집. 수록된 아홉편의 작품은 지은이 자신의 고단한 가족사, 혹은 고향사람들의 삶에 바쳐진 연작 소설이다. '작가의 말'에서 "가까스로 자의식에서 자유로워진 내가 비로소 사물들 본래의 빛깔을 되찾으려는 몹시 조심스러운 시도인지도 모른다"고 밝혔던 것처럼, 존재 본래의 아름다움과 기쁨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 작가의 성숙이 눈에 띈다. '양순이 누님'은 아비가 다른 동복 누님의 삶을 다룬 단편. '나'는 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통보받은 그녀에게서 누이의 친부와 누이의 결혼에 관한 사연을 듣고 괴로웠던 과거를 회상하게 된다. 작가 자신의 성장 비밀이 고스란히 숨어 있는 작품으로, 연작 소설의 시발점이 된다. '끝순이 누님'은 '나'의 외가가 있는 '가메뚝'에 살던 당달봉사 누님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리와 냄새만으로도 용케 사람을 구별해내던 누님이 동네 사람에게 겁탈을 당한 후 사라졌다가 다시 만나게 되는 기억을 세밀하게 복원했다. '울보 유생이'는 유복자로 태어난 외사촌형을 그렸고, '폰개 성'은 간난 속에서도 의젓한 백부의 외아들을 다뤘다. 문둥이의 딸이라는 사실을 평생 숨기고 살아온 '정애'와의 재회를 다룬 '정애 이야기', 폐병장이 '성관이'를 회상한 '물총새 성관이' 등 수록된 모든 작품에서 비루한 삶을 '살아있음의 눈부신 기쁨으로 부활'시키는 작가의 감동적인 시선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