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과 그림

으로 국내에 소개된 바 있는 독일의 저명한 문학평론가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그가 2001년부터 2003년까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에 '내 그림들'이란 제목으로 연재한 문학 칼럼을 모아 엮었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셰익스피어, 레싱, 괴테, 실러, 하이네, 토마스 만, 카프카, 브레히트, 막스 프리쉬, 귄터 그라스 등 한 시대를 풍미한 (독일) 작가들에 대한 견해를 그야말로 거침없고 박력있는 문체로 펼쳐보인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독일 문화사에서 그에 견줄 만한 인물은 지금껏 유례가 없었으니, 그의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다. 이 사람은 마음만 먹으면 못하는 일이 없었으니, 그의 천재성은 도무지 한계라는 걸 모르며 일체의 틀에도 구애받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삶에서 제 자리를 찾는 일만큼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번번이 그의 앞길을 가로막는 건 다름아닌 바로 그 천재성이었다. - E.T.A. 호프만 편" "그는 질풍노도의 혈기 방장한 작가가 아니었고, 이단자도 폭도도 아니었으며, 혁명가는 더더욱 아니었다. 톨스토이 백작 같은 설교자도 아니었고,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집념도 없었다. 그는 결투를 해 본적도 없고, 무슨 모반에 가담한 적도 없었으며, 해외로 도피하지도 않았고, 체포되거나 시베리아 추방을 당한 적도 없으며, 하다못해 그럴 듯한 러브스토리 하나 알려진 바 없다. 이와 같은 부정형 진술에 최종적으로 쐐기를 박는 압권이라면, 체호프가-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처럼 -이 땅에 살았던 위대한 작가들 축에는 들지 못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누가 알랴. 어쩌면 그 대신에 가장 사랑받는, 너무나 따뜻하고 호감가는 작가 축에 들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 나는 체호프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내가 아주 오래 전부터 그에 대한 흠모의 정으로 묶여 있다는 사실을 굳이 감추지 않겠다. - 안톤 체호프 편" 각 작가의 특성을 잘 드러내는 초상화와 캐리커처가 함께 실려있는 이 책은, 결국 한 평론가의 극히 개인적 독서에세이 또는 작가론이라 볼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책읽기를 엿보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 유쾌하고 지적인 책읽기를 경험할 수 있다. "문학은 재미있어야 하고, 비평은 명료해야만 한다'는 지은이의 평소 소신이 잘 드러나 있는 책. (책 표지의 카프카 캐리커처는 또 얼마나 절묘한가!) * 책에서 다뤄진 작가의 상당수가 약간은 생소한 인물들이라는 약점이 있으나, 대신에 언급된 작가나 인명에 대한 해설과 찾아보기가 매우 성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