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저:박완서 경기도 개풍(현 황해북도 개풍군) 출생으로, 세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서울로 이주했다. 1944년 숙명여자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교사였던 소설가 박노갑에게 영향을 받았으며, 작가 한말숙과 동창이다. 1950년 서울대학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전쟁으로 중퇴하게 되었다. 개성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서울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박완서에게 한국전쟁은 평생 잊을 수 없을 없는 기억이다. 의용군으로 나갔다가 부상을 입고 거의 폐인이 되어 돌아온 `똑똑했던` 오빠가 `이제는 배부른 돼지로 살겠다`던 다짐을 뒤로 하고 여덟 달 만에 죽음을 맞이하고, 그후 그의 가족은 남의 물건에까지 손을 대게 되는 등 심각한 가난을 겪는다.
그후 미8군의 PX 초상화부에 취직하여 일하다가 그곳에서 박수근 화백을 알게 된다. 1953년 직장에서 만난 호영진과 결혼하고 살림에 묻혀 지내다가 훗날 1970년 불혹의 나이가 되던 해에 '여성동아' 여류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裸木)』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그 이후 우리의 일상을 세심하게 관찰하여 그 이면에 숨겨진 진실까지 뼈아프게 드러내는 소설들을 발표하며 한국 문학의 한 획을 긋고 있다. 박완서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소재에 적절한 서사적 리듬과 입체적인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다채로우면서도 품격 높은 문학적 결정체를 탄생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다. 작가는 우리 문학사에서 그 유례가 없을 만큼 풍요로운 언어의 보고를 쌓아올리는 원동력이 되어왔다. 그녀는 능란한 이야기꾼이자 뛰어난 풍속화가로서 시대의 거울 역할을 충실히 해왔을 뿐 아니라 삶의 비의를 향해 진지하게 접근하는 구도자의 길을 꾸준히 걸어왔다.
한국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다룬 데뷔작 『나목』과 『목마른 계절』『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틀니』『아저씨의 훈장』『겨울 나들이』『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등을 비롯하여 70년대 당시의 사회적 풍경을 그린 『도둑맞은 가난』『도시의 흉년』『휘청거리는 오후』까지 저자는 사회적 아픔에 주목하여 글을 썼다. 『살아있는 날의 시작』부터 여성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작가는 행복한 결혼은 어떤 형태인가를 되묻게 하는 소설인 『서 있는 여자』『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등 점점 독특한 시각으로 여성문제를 조명하기 시작한다. 또 장편 『미망』『그 많던 싱아를 누가 다 먹었을까』『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등에서는 개인사와 가족사를 치밀하게 조명하여 사회를 재조명하기도 한다.
『배반의 여름』은 1975년 9월에서 1978년 9월까지 발표했던 작품들을 수록하고 있다. 「조그만 체험기」「흑과부黑寡婦」「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등에서 볼 수 있듯이 박완서가 그리는 모성의 힘은 실로 놀랍다. 성균관대에서 열린 ‘2006 호암상 수상자(예술상) 초청 강연회’에서 박완서는 이렇게 말했다. “내 문학의 뿌리는 어머니”라고. 박완서 특유의 수다스러움으로 풀어내는 모성의 힘은 힘센 것들만이 권력을 쥐고 판을 치는 현대산업사회에서 뒤로 처진 자들의 아픔을 진정으로 위무해준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에는 1987년 1월에서 1994년 4월까지 발표되었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가족의 죽음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 네 개나 있는데 그중「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은 남편의 죽음을,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은 아들의 죽음을 담고 있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은 특이하게도 처음부터 끝까지 대화체로 되어 있는데 담담하게 이어가는 주인공의 목소리에서 가슴이 메어지는 슬픔을 느낄 수 있다.
『저녁의 해후』에는 1984년 1월부터 1986년 8월까지 발표했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지 알고 내 알고 하늘이 알건만」「해산바가지」「애 보기가 쉽다고?」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여기에서 나타나는 하층민들의 인간애는 가진 자들의 야만성과 대비되어 더욱 빛을 발한다. 『그의 외롭고 쓸쓸한 밤』은 1979년 3월에서부터 1983년 8월까지 발표한 작품들을 수록했다. 이 책에서는 특히 속물성과 위선이 난무하는 현실에 대한 비판이 두드러진다. 젊은 것들의 무관심과 조롱 속에서 외롭게 늙어가는 노인들의 모습을 담아낸 「황혼」「천변풍경泉邊風景」과, 출세한 자들의 허위를 그린 「내가 놓친 화합(和合)」「그의 외롭고 쓸쓸한 밤」 등이 그것이다. 『미망』은 조선조 말기에서 6ㆍ25 전쟁 직후까지 그 파란만장했던 시대를 한 개성 상인의 가족사를 통하여 재창조한 대하소설이다. 민족의 수난사와 더불어 고난과 격동의 시대를 험준한 산을 넘듯 숨가쁘게 살아온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박완서 소설 문체가 도달한 궁극적인 경지를 보여 주고 있다.
“아직도 글을 쓸 수 있는 기력이 있어서 행복하다.”는 작가는 사람과 자연을 한없이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느낀 기쁨과 경탄, 감사와 애정을 담아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펴냈다. ‘친절한 책읽기?라는 제목으로 신문에 연재했던 글도 함께 실어 노작가의 연륜과 성찰이 돋보이는 글을 선보였다.
1993년부터 국제연합아동기금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1994년부터 공연윤리위원회 위원, 1988년부터 제2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그 가을의 사흘 동안』으로 한국문학작가상, 『엄마의 말뚝』으로 제5회 이상문학상 『미망』으로 대한민국문학과 제3회 이상문학상 『꿈꾸는 인큐베이터』로 제38회 현대문학상 등을 받았다. 2006년, 문화예술인으로서 처음이자 여성으로서도 처음으로 서울대학교 명예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평소 입버릇처럼 "전쟁의 상처로 작가가 됐다."고 고백해왔던 그녀는 전쟁의 아픔을 온몸으로 겪은 경험으로 글을 써왔다. 여러 편의 장편소설과 수필집, 동화집을 발표하고, 2010년 8월 수필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마지막으로 2011년 1월 22일, 담낭암 투병 중 별세했다. 경기 구리시에는 '박완서 문학마을'이 조성될 예정이다.
동저:조세희 소외된 도시 하층민의 삶을 다룬『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통해 시대의 그림자를 밝혀온 소설가.
1942년 경기도 가평에서 태어나 서라벌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6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돛대 없는 장선」이 당선되어 등단했으나, 문단의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75년 난장이 연작의 첫 작품인 『칼날』을 발표하면서부터이다. 1976년 난장이 연작 『뫼비우스의 띠』 『우주공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등을 발표하였으며, 1977년 역시 난장이 연작 『육교 위에서』 『궤도회전』 『은강 노동가족의 생계비』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등을 발표하였다.
1978년 『클라인씨의 병』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에필로그』를 이전의 난장이 연작과 함께 묶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라는 작품집을 출간하여, 문학적 성취와 상업적 성공을 함께 이룬 문제작으로 주목 받았다.
그의 난장이 연작은 1970년대 한국사회의 모순에 정면으로 접근하고 있다. 여기에서 난장이는 정상인과 화해하며 살 수 없는 대립적 존재로 등장하고 있으며, 1970년대 한국사회의 최대 과제였던 빈부와 노사의 대립을 극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소설적 접근을 통해 한국의 1970년대가 이 두 대립항의 화해를 가능케 할 만큼의 성숙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또한 그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를 그려내고 있는 난장이 연작에 환상적 기법을 도입함으로써, 계급적인 대립과 갈등이 마치 비논리의 세계나 동화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그 결과 현실의 냉혹함은 더욱 강조된다.
연작 형식은 소설 양식의 확대를 가능하게 하면서 이야기 형식의 긴장과 이완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 이 같은 형식이 난장이 연작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1970년대 소설이 종래의 단편 형식으로는 현실에 적절히 대응할 수는 없으며 그렇다고 장편 양식으로 현실을 개괄할 수 있을 만큼의 성숙에는 이르지 못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볼 수 있는 주제와 양식과 기법에 대한 도전과 그 성과는 1970년대 문학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오늘 쓰러진 네모』(1979), 『긴 팽이모자』(1979), 『503호 남자의 희망공장』(1979), 『시간여행』(1983), 『하얀 저고리』(1990)를 비롯하여, 소설집으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78), 『시간여행』(1983)과 콩트를 사진과 함께 엮은 『침묵의 뿌리』(1986), 희곡 『문은 하나』(1966)가 있으며,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로 이상문학상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으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난쏘공' 이후에는 한 권씩의 소설집과 사진 산문집을 내놓았을 뿐 그는 글로 소통하는 대신 카메라를 들었다. 집회 현장을 빠짐 없이 다니며 약자들의 투쟁을 렌즈에 담아왔으며, 언젠가 그간 찍은 사진을 정리해 후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와 함께 남길 것이라고 한다. 광주 이야기를 담은 「하얀 저고리」 역시 언젠가는 세상에 내놓을 계획이다.
"'하얀 저고리'는 작품이 됐건, 안 됐건 끝내기는 할 것입니다. 한국에서 책 내서 만 명 정도 읽으면 읽을 사람은 다 읽은 거예요. '하얀 저고리' 내서 만 명 정도 읽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병 걸리고 의식 잃고 하다보니 죽는 것 무섭습디다. 그렇지만 진짜 힘든 건 좋은 작품을 쓰는 거예요. 내가 이 세상에 살았다는 흔적이니까요"
동저:이청준 1939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했다. 1965년 '퇴원'으로 <사상계> 신인문학상 공모에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했으며 1966-72년 월간 <사상계> <아세아> <지성> 편집부 기자로 재직하였고, 1999년에는 순천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석좌교수로 활동하였다.
작품으로는 『병신과 머저리』, 『굴레』, 『석화촌』, 『매잡이』, 『소문의 벽』, 『조율사』, 『들어보면 아시겠지만』, 『떠도는 말들』, 『이어도』, 『낮은 목소리로』, 『자서전들 쓰십시다』, 『서편제』, 『불을 머금은 항아리』, 『잔인한 도시』, 『살아있는 늪』, 『시간의 문』, 『비화밀교』, 『자유의 문』, 『별을 보여 드립니다』, 『가면의 꿈』, 『당신들의 천국』, 『예언자』, 『남도 사람』, 『춤추는 사제』, 『흐르지 않는 강』, 『낮은 데로 임하소서』, 『따뜻한 강』, 『아리아리 강강』, 『자유의 문』 등 여러 편의 소설과 소설집이 있으며 수필집 『작가의 작은 손』, 『사라진 밀실을 찾아서』, 『야윈 젖가슴』 등을 비롯해, 희곡 『제3의 신』등이 있다.
그 밖에 동화 『할미꽃은 봄을 세는 술래란다』를 비롯하여 판소리 다섯마당을 동화로 풀어 쓴 『놀부는 선생이 많다』, 『토끼야, 용궁에 벼슬 가자』, 『심청이는 빽이 든든하다』, 『춘향이를 누가 말려』, 『옹고집이 기가 막혀』를 포함한 많은 작품이 있다.
어렸을 때 아버지와 큰형, 아우의 죽음은 이청준을 문학의 길로 이끌었다. 벽촌이던 고향에서 광주로 고등학교를 진학하여 고향 사람들의 자랑거리였다. 법관이 될 거라는 기대를 뒤로 하고 그는 문학의 세계에 눈을 돌리고 독문학과에 진학했다. 우리 현대소설사에서 가장 지성적인 작가로 평가 받는 이청준은 그의 소설에서 정치·사회적인 메커니즘과 그 횡포에 대한 인간 정신의 대결 관계를 주로 형상화하였다. 특히 언어의 진실과 말의 자유에 대한 그의 집착은 이른바 언어사회학적 관심으로 심화되고 있다.
그의 소설들 중에는 영화화된 작품이 많은데, 1972년 정진우 감독의 ‘석화촌’을 시작으로, 세계적인 컬트 감독으로 추앙받는 김기영 감독의 ‘이어도’(1977), 맹인 목사 안요한의 일대기를 그린 이장호 감독의 ‘낮은 데로 임하소서’(1982), 국내 최초로 100만 관객을 돌파했던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1993)와 ‘축제’(1996), ‘천년학’(2006), 삶의 의미와 구원의 문제를 탐색케 하는 칸영화제 수상작인 이창동 감독의 ‘밀양’(2007), 그리고 2008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상영됐던 윤종찬 감독의 ‘나는 행복합니다’(2008) 등이 모두 이청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이다.
또한 그는 동화쓰기에도 힘을 기울여 『할미꽃은 봄을 세는 술래란다』를 비롯하여, 판소리 다섯마당을 동화로 풀어 쓴 『놀부는 선생이 많다』『토끼야, 용궁에 벼슬 가자』『심청이는 빽이 든든하다』『춘향이를 누가 말려』『옹고집이 기가 막혀』를 집필하기도 했다. 동인문학상, 한국일보 창작문학상, 이상문학상, 중앙문예대상, 대한민국문학상, 이산문학상, 대산문학상, 제비꽃 서민 소설상 등을 수상했으며, 사후에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초기에는 상징적이고 관념적인 성격의 소설을 많이 썼으나 1980년대 접어들면서 보다 궁극적인 삶의 본질적 양상에 대한 소설적 규명에 나섰다. 2007년 폐암을 선고받고 항암치료 중 병세가 악화돼 입원치료를 받다 2008년 7월 31일 유명을 달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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