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희 윤석남의 여성이야기

이 시대를 대표하는 여성 시인과 화가가 한권의 책 안에서 멋진 만남을 가졌다. 32편의 산문과 41편의 미술작품이 실린 이 책에는, 지금껏 그들이 여성으로 살아오면서 경험하고, 느끼고, 사유한 모든 것들이 담겨있다. 를 통해 '여성, 여성성, 여성문학'을 성찰한 바 있는 김승희 시인은, 사회와 제도, 혹은 여성 스스로 뒤집어쓴 오해와 굴레를 벗기기 위한 '도주'와 '부정'의 여정을 보여준다. 시인은 '여성'이라는 이름에 날개를 달아주려 하는 것. '독하고 이기적인 것처럼 굴지만 엄마가 아프면 반드시 따라 아프는' 딸이었던 시인은, 자신의 삶에서 가장 큰 테마가 된 엄마와의 관계를 이야기한다. 복잡미묘할 수밖에 없는 모녀 사이는 '스프가 식지 않을 정도의 거리'가 적당하며, 어쩌면 우리는 평생 엄마의 탯줄에 휘감긴 채 살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던진다. 책장 사이사이에 놓인 윤석남의 그림과 설치미술은 글과 어우러지면서 또다른 공감의 세계를 이끌어낸다. 늦은 나이에 미술공부를 시작한 윤석남은 여성 최초로 '이중섭 미술상'을 수상하는 등 여성미술계를 대표하는 예술가로, '이프'의 초대발행인을 지내기도 했다. 나무나 빨래판, 의자처럼 여성과 친숙한 사물을 소재로 한 설치작업을 통해 여성미술의 지평을 넓혀온 그녀. 여성의 아름다움과 고통의 체험, 내면에 자리한 강인한 힘과 의지가 섬세한 드로잉을 통해 훌륭하게 형상화된다. 두 시인과 화가는 자신들의 개인적 체험을 언어와 미술이라는 매개를 통해 멋지게 승화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