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Q)

종교 개혁을 시발로 근대가 탄생하던, 격동기의 유럽을 배경으로 한 역사 스릴러. 정치적 소용돌이의 한가운데 놓인 주인공과, 음지에서 추기경의 스파이로 활동하며 평생을 '시대의 희망을 지우는 데' 종사한 스파이 Q의 삶과 투쟁이 숨 가쁘게 펼쳐진다. 이야기는 날렵하고 속도감 있게, 상황 묘사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소설과 관련해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이 작품을 창작한 작가(들)이 '루터 블리셋'이라는 가명 뒤에 감추어져 있다는 것. 이 이름은 1994년부터 전 유럽에서 수백 명의 예술가와 사회 운동가들이 공식.비공식적으로 공용해왔다. 1994년 이탈리아에서 소설 <Q>가 인터넷에 연재되기 시작하면서, 창작자 집단 '루터 블리셋 프로젝트(이 이름을 함께 쓰는 열린 공동체 내의 조직화된 네트워크)'는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기성의 관습을 철저하게 거부하는 이들의 문학.정치.역사관은 유럽 젊은이들의 지지 속에 컬트 소설로 자리매김 했다. 음모를 놓고 벌이는 주인공들의 격전만이 아니라 이들을 둘러싼 다른 인물들의 움직임, 그리고 시대의 흐름이 날카롭게 포착되어 있다. 즉 99%가 실제 사건과 실제 인물로 짜여졌다는 이 소설 속에서, 역사가 진행되고 인물 행동의 동기와 원인에 대한 해석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작가들은 들뢰즈와 가타리의 이 이 소설이 지닌 세계관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다국적 금융 자본을 연상시키는 근대 금융 체제, 미국의 네오콘을 연상시키는 극단적인 반 종교개혁 세력, 또 알카에다를 상기시키는 극단적인 반 세계화 세력, 미국과 유사한 제국의 등장 등은 바로 오늘날의 우리 이야기처럼 읽힌다. 장르상으로는 '팩션' 형태를 띠는데, 물론 작가들이 이 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한 1994년에는 아직 그러한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