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의 부장들 - 개정 증보판

중앙정보부 18년을 통해 박정희 시대를 조명하는 책

1992년 출간 즉시 52만 부 판매, 2012년 개정 증보판 [화보 30페이지 삽입]

타계한 작가 이병주는 “햇빛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고 했다.
이 책은 한국 중앙정보부( KCIA)의 부장(부총리급)들과 이들이 주도한 공작정치를 소재로 한국정치의 이면사를 들추어낸다. 의미심장하게도 과거는 현재에 대해서도 발언한다. 최근 대선 정국에서 화제가 되었던 정수장학회, 부산일보, MBC 경영권, 민청학련 등 과거사 문제는 ‘중앙정보부의 시대’에 씨가 뿌려졌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햇빛과 달빛 아래 움직였고, 지금도 살아 있는 사람들이 빚어낸 신화적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김종필(좌)과 김재춘(우)
김종필은 5.16 쿠데타가 성공하자마자 박정희의 명을 받아 중앙정보부 창설에 나섰다.

1961년 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거머쥔 박정희와 김종필은 미국의 CIA(Central Intelligence Agency)를 본떠 한국 중앙정보부를 만들었다. 미국의 그것은 주를 넘나드는 조직범죄, 마약범죄 등을 수사하기 위한 조직이었지만, 한국의 중앙정보부는 정권에 반대하는 모든 행위를 차단, 탄압, 단속하는 것을 주요 업무였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도저히 용납되기 어려운 정치공작, 선거조작, 이권배분, 정치자금 징수, 미행, 도청, 고문, 납치 심지어 대통령의 여자관리까지 맡아서 했다. <남산의 부장들>은 대통령과 정권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자행된 이 모든 불법행위에 대한 한 기자의 추적기다.

책은 1961년 5?16 군사쿠데타의 첫날 전두환 대위가 육군본부에 등장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서울대 ROTC 교관으로 있던 전두환은 군사쿠데타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화롯가에 나타나는 고양이처럼 즉각 사태의 핵심 현장에 나타난다. 전두환은 박정희 18년 동안 대위에서 소장으로 승진하고 박정희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탄에 사망하던 1979년에는 국군 보안사령관으로 재직 중이었다. 그리고 중앙정보부장을 스스로 차고앉아 다음 권력자로의 길을 달려간다.
박정희는 총으로 집권했다. 재임 기간 중 계엄령, 긴급조치 등 무력에 의존했고 마지막에는 총으로 일어선 자, 총으로 망했다.

12.12쿠데타에 성공한 전두환은 중앙정보부장을 겸직하고 권력의 길을 달려간다.
사진은 대통령 취임 직후, 육사 동기인 노태우 등에게 대장계급을 달아주는 모습.

친親박정희-박근혜 vs 반독재 투사들의 여전한 대립

박정희 18년의 정치와 사회가 어떤 원리 아래, 어떤 사람들에 의해 움직여갔는지를 증언하는 이 책은 흘러간 현대사의 그림자가 아니다. 박정희 시절, 중앙정보부는 숱한 간첩단 사건, 반국가단체 사건을 발표했는데 실상 그 중 상당수는 정권 도전 세력, 민주주의 회복 세력을 탄압하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 주역들, 가해자와 피해자는 지금도 이 땅에 존재하고, 활동하고 있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을 예로 들자면, 이해찬(전 국무총리)은 민주화를 촉구하는 유인물을 뿌리고 10년 형을 선고받았다.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은 두 달간 구속영장도 없이 수감돼 있다가 기소유예, 김근태(전 보건복지부장관)는 배후조종 혐의로 수배됐다. 손학규(전 경기지사) 역시 마찬가지. 장영달(전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은 7년 선고에 7년 복역, 유인태(전 정무수석)는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4년 복역 후 출소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저자가 되는 유홍준(전 문화재청장)은 7년 선고에 1년 복역, 이강철(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가장 무거웠다. 15년 선고에 8년을 복역했다.
김대중은 박정희 정권 초기부터 대통령의 명을 받은 중앙정보부와 격돌하며 선거에서 승리해나가더니 결국은 중앙정보부의 오판 속에 야당의 대통령후보가 되었다. 결국 그는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의 지시에 따라 일본 도쿄에서 납치된다. 김영삼도 마찬가지. 정보부는 일찌감치 대찬 야당의원 김영삼의 승용차에 초산을 끼얹는 테러를 했다. 1979년에는 야당 총재 김영삼에 대한 ‘처리’ 방안을 놓고 김재규의 정보부와 차지철의 경호실과 강온 갈등을 빚었다. 김재규와 차지철의 대립은 10.26으로 이어졌다.

박정희 중앙정보부의 탄압을 받아왔던 김영상과 김대중은 1990년대에 걸쳐 차례로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다.

지금도 흔적이 뚜렷한 공작정치, 그리고 그 안의 사람들

가해자의 편에 서 있던 사람들도 중앙정보부의 손길을 벗어나진 못했다. 정보부는 이 기관의 설계사였던 김종필에게도 가혹했다. 김종필은 박정희 임기 중 세 번 가택수색을 당했다. 미행과 도청은 물론이다. 역대 가장 강력한 정보부장이었던 김형욱은 퇴임 후 1979년 파리에서 중정 요원의 사주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후락 역시 1980년 이후 세상에 얼굴을 드러내지 못하다가 사망했다. 2012년의 유력 정치인인 박근혜도 중앙정보부와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박근혜는 어머니 육영수가 암살된 이후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던 중 최태민과의 관계설에 휩싸였다. 대통령 박정희는 이 스캔들의 조사를 중앙정보부에 지시했고 나중에는 조사 담당자, 최태민 등 관계자들을 '친히' 대질신문했다. 박정희 시절 만들어진 정수장학회, 민청학련 사건 등은 지금도 대통령 후보 박근혜에게 따라다니는, 과거가 아닌 현재적 명제들이다.

박정희 시대 중앙정보부는 경제와도 관계가 있다. 현대그룹의 창시자인 정주영은 권력 실세나 장군들에게 ‘집 한 채 지어주겠다’며 접근해 친해졌고, 정경유착의 인연은 훗날 경제인 정주영의 대통령 출마로까지 이어졌다. 쌍용그룹의 창업주인 김성곤은 박정희에게 대들었다가 정보부에 끌려가 콧수염이 뽑히는 치욕을 겪었고, 한화그룹의 창시자인 김종희와 동생 김종철 또한 정치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중앙정보부는 외교.안보도 사실상 주물렀다. 이후락은 현역 중정부장으로서 북한을 방문하고 김일성과 회담했다. 남북 양측의 국력이 팽팽하던 시절에 시작된 남북대화는 인도차이나가 공산화되면서 내부 체제 강화 경쟁으로 이어지다가 침몰했다. 북한도 김일성의 권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헌법을 고쳤고, 남한은 박정희 1인 무단통치가 특징인 유신체제로 접어들었다. <10월유신> 또한 중정이 목표지향적 율사들을 데리고 주도한 작업이었다.

성 김 주한 미국대사. 성 김 대사의 부친은 1973년 도쿄에서의 김대중 납치사건 당시 중앙정보우의 도쿄주재공사였던 김기완이다. 김대중은 나중에 “아버지의 일로 연좌해서 아들에게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고 관대한 입장을 보였다.

이 책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의 여색 행각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박 대통령이 중정부장, 경호실장 등과 갖던 ‘밤의 연회’에 그 당시 달력에 나오는 연예인들이 거의 모두 참석했다는 증언도 있다. 이 행사를 주관하던 중앙정보부 과장은 가정 분란이 생겼고, 또 한 사람은 결국 10?26과 함께 총살당했다.

이 책은 저자의 3년여 취재결과이기도 하지만 박정희 정권 당시 동아일보의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기록해놓은 미공개 취재노트에도 힘입은 바 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의 동아일보는 양심적 비판 언론으로 인정받았다.
저자는 말미에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E.H 카의 말이 떠오른다’고 소회를 밝힌다.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는 10.26으로부터 23년이 지난 뒤 집권여당의 대통령후보가 되었다.

176명에 이르는 정치파워엘리트 인명사전, 주요 사건일지 신규 수록

이 책은 과거가 결코 죽지 않았음을, 오히려 살아있는 사람들의 미래까지 지배함을 웅변한다. 1992년 출간 당시 50만 부가 팔려나간 베스트셀러였다. 일본에서도 번역 출간돼 한국으로 부임하는 외교관, 상사원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20년 만의 개정 증보판을 위해 등장인물 176명에 대한 2012년 현재의 상태를 인명사전 형식으로 정리해 권말부록으로 담았다. 주요 사건과 핵심 쟁점에 대해서도 2012년 현재 종합적으로 정리된 시각을 본문과 권말 부록에 반영했다.

박정희 정권 18년을, 1961년 5.16 쿠데타의 아침에 전두환 대위의 등장으로 펼쳐 보인다. 그리고 종국에 1979년 박정희가 살해되고 전두환 장군이 10번째 정보부장으로, 박정희의 후계자로 등장하는 팡파르로 끝을 맺는다. (중략)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 아직도 우리 옆에 있음을 웅변하는 과거사 백과, 정치인물 백과이기도 하다.
- 김주언 (전 한국기자협회 회장)

박정희가 떠난 지 33년이 흐른 오늘날, 박정희 시대라는 거대한 쓰나미의 여진은 현재 진행형이다. 우리는 아직도 박정희 시대의 그늘에 갇혀 있다. 그 박정희 시대는 중앙정보부가 열었다. 3선개헌, 유신, 정치공작, 이권배분, 심지어 여색(女色)관리까지. 그리고 마침내 10?26 암살로 그 시대를 닫아버린 것도 정보부였다.
- 개정 증보판 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