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언

이 책은 최근 몇년 동안 전세계에서 행해진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강연 모음집인 The end of the world as we know it : social science for the twenty-first century를 저자와 함께 페르낭 브로델 센터에서 연구한 바 있는 백승욱(한신대 국제학부) 교수가 번역한 것이다. 이 책에서 월러스틴은 우리가 당연시하며 살아온 근대 자본주의세계 자체, 그리고 그것을 지탱해온 자유주의라는 거대한 이데올로기, 그리고 이에 맞서 온 저항의 지배적 형태 모두에 심각한 위기가 발생하였다고 선언한다. 다시 말해 월러스틴이 제기하는 '종언'이란,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세계경제로서의 근대세계체계가 구조적 위기를 겪으면서 종언을 맞이하고 있다는 뜻인 동시에, 그 세계에 대한 주요한 지적 구성물인 근대적 사회과학 역시 유효성의 상실로 말미암아 종언을 고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의미이다. 그는 자신이 말하려는 세계의 종언을 '자본주의 세계'와 '지식 세계'에서의 종언으로 구분하고, 이에 따라 책을 크게 2부로 구성하였다. 1부 자본주의 세계(1 ~ 8장)는 실재세계에서 최근 수십년간에 일어난 주요한 사건들 - 소련의 붕괴, 민족해방운동의 고갈, 동아시아의 부상, 아시아의 금융위기, 생태위기 등 - 을 다루고 있다. 2부 지식세계(9 ~ 15장)는 사회과학의 영역에 문제를 제기하는 글들이다. 이는 새로운 지식세계에서 사회과학이 나아가야 하는 방향에 대한 논의로서, 합리성에 대한 신뢰의 소멸, 사회과학 학문분과의 분화 및 재구성,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비판, 과학과 인문학으로의 지식의 분할에 대한 문제제기 등을 포함하고 있다. 월러스틴은 이와같이 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언을 선포한 후, 단지 이것이 모든 것의 붕괴가 아니라 새로운 출발일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세계의 역사와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는 지식은, 국가권력에 의한 억압이나 국가주의적 발전주의를 재생산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진정한 국제주의 운동을 사고하는 계기로 거듭날 수 있으리란 기대를 비치고 있다.